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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IR52 장영실상 30주년] "R&D정책은 국가의 무기…10개 부처가 제각각 관리, 말이 되나"
    등록일 2021-09-01
    내용


    [매경이 만난 사람] 구자균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 회장

    코로나 장기화로 경영난 가중
    가장 먼저 R&D 예산부터 줄여
    애써 쌓은 기술기반 다 무너져
    IMF때 쓰라린 경험 반복 안돼

    韓 `룰메이커` 경쟁 이기려면
    정부 민간투자로 버팀목 돼야

    내년 AI 인재 1만명 부족 전망
    범부처 `혁신인재본부` 만들어
    미래 기술인력 확보 나설 때


    ◆ IR52 장영실상 30주년 ⑦ ◆ 


    구자균 회장은 최근 매일경제와 IR52 장영실상 30주년을 맞이해 가진 인터뷰에서 


    사진설명구자균 회장은 최근 매일경제와 IR52 장영실상 30주년을 맞이해 가진 인터뷰에서 "투자가 위축되면 당장 위기는 넘길지 몰라도 미래 성장 가능성은 낮아지게 된다"고 강조했다. [매경 DB]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맞아 많은 기업이 연구개발(R&D)을 크게 축소했다. LS일렉트릭도 마찬가지였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위기를 벗어나고서는 그 결정을 무척이나 후회했다." 구자균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 회장(LS일렉트릭 회장)은 매일경제와 인터뷰에서 불쑥 24년 전의 금융위기를 언급했다. "당시 통계에 따르면 1998년 기업들의 R&D 투자는 9.9% 줄었다. 우리(LS일렉트릭)도 마찬가지 선택을 했다"며 "하지만 한번 기술경쟁에서 뒤처진 후 이를 회복하기가 몹시 힘들었기 때문에 지금 와서는 매우 후회스러운 결정"이라고 밝혔다. 

    그가 과거의 쓰린 경험을 털어놓은 이유는 기업들을 대표하는 산기협 회장이자 오랜 기간 기업을 이끌어온 선배 기업인으로서 동료 기업인들이 같은 후회를 반복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다. 구 회장은 "산기협이 지난해 연구소를 보유하고 있는 기업들을 대상으로 조사해본 결과 1500개 기업 중 59%가 코로나19 여파로 R&D에 차질을 빚고 있다고 답했다"며 "이렇게 투자 위축이 지속되면 당장 위기는 극복할지 몰라도 미래 성장 가능성은 그만큼 낮아지게 된다"고 강조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많은 기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작년에 비해서는 조금 나아졌지만 동남아시아, 중국 등은 갈 수조차 없는 상황이다. 특히 중소기업들은 많이 힘들 수 있다. 경영난에 부딪힌 기업은 당장 매출에 직결되지 않는 부분에 대한 감축을 고려하고, R&D는 그 첫 번째 대상이 된다. 산기협이 지난해 말 실시한 R&D 투자 전망 조사에서 기업들 투자지수가 91.2에 그쳤다. 지수가 100 이하라는 것은 전년도보다 투자를 더 줄인다는 소리다. 조사가 시작된 2013년 이후 가장 낮은 숫자가 나왔다. 이렇게 되면 특히 중소기업들은 애써 구축한 R&D 기반이 무너져버리게 된다. 

    -위기를 맞은 기업에 R&D 축소는 피할 수 없는 선택 아닌가. 

    ▷경로 의존성(Path Dependency)이라는 말이 있다. 새로운 기술이 시장을 선점하면 이 기술은 '기준'이 된다. 이 기준은 오랫동안 산업을 지배하며 큰 파급효과를 갖는다. 이게 경로 의존성이다. 한번 경로가 결정되고 나면 이를 벗어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세계 기업들 경쟁은 이러한 기준을 만들고 '룰 메이커'로서 시장을 선점하는 경쟁이다. 이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무기가 R&D다. 기업들은 당장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R&D 투자를 낮출 수밖에 없고, 중소기업일수록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는 정부가 이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민간 R&D 투자를 확대해줬으면 좋겠다는 게 우리 바람이다. 기업들이 이 위기를 이겨내는 버팀목이 될 수 있도록 함께 논의해줬으면 한다. 

    -기업이 위기를 극복하는 저력은 어디에서 나올까. 

    ▷책임 있는 리더와 오너의 의지와 결단에서 온다고 본다. 불확실성이 높은 장기 R&D 투자 결정은 기업에 매우 어려운 문제다. 우리 기업들이 지금까지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책임 있는 오너가 기업가정신을 발휘한 덕분이다. 일례로 지금의 K바이오는 어려운 시기에 미래를 위해 꾸준히 투자한 기업인들이 맺은 노력의 결실이다. SK그룹은 1990년대 초반 제약·바이오 사업에 뛰어든 후 20년간 이렇다 할 매출을 올리지 못했지만 투자를 포기하지 않았기에 지금의 성과가 있었다. 고 최종현 회장이 당시 신약 개발에 실패했던 연구진에게 "부작용을 미리 발견한 게 절반의 성공"이라며 격려했다는 일화가 있다. 최 전 회장이 지원사격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 SK의 바이오 사업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 그래도 모든 게 기업 힘으로만 되는 것은 아닌 듯하다. 

    ▷물론이다. 기술 경쟁력 확보는 기업 노력만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고, 특히 위기 상황일수록 국가의 적극적인 지원과 협조가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기업들이 우수한 연구 인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정부가 R&D 인재 정책을 혁신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천연 자원도 없고 인적 자원밖에 없지 않으냐. 한국이 빠른 시간 안에 급속히 성장한 이유 중 하나도 부모들의 교육열, 그로 인한 훌륭한 인재 양성 아니겠나. 사람을 잘 키워야 한다. 현재 제조업에서만 산업기술 인력 2만7000명이 부족하고, 첨단 분야는 더 심각해 2022년이면 인공지능(AI) 관련 인재는 1만명이 부족할 것으로 본다. 현재 10개 부처에 흩어져 분산 운영되는 R&D 인재 정책으로는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어렵다. 국가가 범부처 '혁신인재본부'를 신설하고 체계적으로 산업계가 기술 인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지원·관리해줘야 한다. 

    -정부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나. 

    ▷예를 들어 지금 기업은 어떤 분야의 기술 인력이 필요한지에 대해 교육당국에 제시할 방법도 마땅치 않은 상황이다. 산업계에서 필요한 인력 양성 등을 비롯해 기술 인력 확보와 관련해 기민하게 소통할 수 있는 정부 전담 조직이 있으면 불균형이 상당히 해소되지 않을까. 일단은 여러 부처에서 각자 예산을 갖고 따로따로 운영하는 정책부터 하나로 통합해야 한다. 국가 역량이 미래 혁신 인재 양성으로 결집돼야 할 때다. 

    -이를 포함해 기업들 의견을 모아 최근 정부에 정책 과제를 제안했다. 

    ▷지금이 위기이자 기회이기 때문이다. 미·중 무역전쟁으로 세계 경제질서가 재편되고 있다. 이 시점을 기회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기존과는 다른 과감한 산업기술정책 변화가 필요하다. 무역 의존도가 60%가 넘고 미·중과 정치외교적으로 복잡한 관계인 우리에게 현재 상황은 큰 위협이지만 탈중국화 본격화로 한국은 새로운 프런티어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있다. 이전보다 빠르고 과감한 기술혁신 정책이 나와야 한다는 게 기업들의 목소리다. 

    -기업이 정부 R&D 기획에 참여하는 민간 협의체를 만든 것으로 안다. 

    ▷지금은 R&D 투자 100조원 시대이고, 기업은 국가 R&D의 80%를 담당한다. 뒤집어 생각해보면 그 전까지는 80%를 기여하는 기업이 정책에는 참여를 못했던 거다. 기업의 R&D 정책이 정부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협의체를 만들었다. 정부 역할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R&D 협의체를 통해 우리 민간기업 수요를 전하고 국가가 이를 기초로 국가 R&D와 섞어서 정책을 만들어주면 좋을 것이라는 얘기다. 벌써 성과가 나오고 있다. 올해 상반기에 60건 정도 기술을 발굴해 내년도 정부 사업에 반영하기로 했고, 하반기 안에는 협의체의 전략보고서도 나올 것이다. 


    "장영실상 받은 기업, 수출 74% 늘어…명예의 전당 만들겠다"


    -IR52 장영실상이 30주년을 맞았다. 

    ▷1991년 처음 제정돼 벌써 30년이 됐다. 지금은 연구원들이 가장 많이 받고 싶어하는 상이자 산업기술계 최고의 상으로 발전했다.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 김명환 LG에너지솔루션 사장 등 많은 기업의 최고 임원들이 젊은 시절에 이 상을 받았다. 

    -IR52 장영실상이 한국 산업기술 발전에 어떤 기여를 해왔다고 평가하나. 

    ▷장영실상은 무엇보다도 우리나라 산업기술 수준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산업기술 분야 시상 제도다. 수상 제품 중 25%가 세계 최초·최고 기술이다. 세계 최초 5G 스마트폰, 세계 시장 점유율 1위 낸드플래시 메모리와 2차전지, 세계 10대 자동차 엔진에 선정되기도 한 타우엔진같이 빛나는 기술과 제품들이 장영실상을 통해 소개됐다. 

    -기업들에 미친 영향이 있다면. 

    ▷기업들이 기술을 혁신하고자 하는 의지를 크게 고취시켰다고 생각한다. 장영실상 시상식을 하면서 기업인들과 대화하다 보면 재수·삼수 끝에 장영실상을 수상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물론 장영실상은 우수한 기술을 칭찬하는 상이지만, 이외에도 기업 스스로 기술 혁신 수준 목표를 높이도록 유도하는 등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실제 산기협에서 30년간 장영실상을 수상한 기업들을 추적해봤다. 매출은 82%, 수출액은 74%가 늘었다. 30주년을 맞아 IR52 장영실상 '명예의 전당'을 만드는 것도 구상 중이다. 

    -명예의 전당이란 어떤 것을 말하나. 

    ▷ IR52 장영실상은 우리나라 기업이 자체 개발한 신기술과 제품에 대해 매주 수상을 하지만, 연 단위로 수상하는 가장 큰 규모의 대통령상과 국무총리상이 있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이 상을 받은 기업들 내용을 동판으로 만들어 전시해놓는 공간을 마련하면 이를 통해 IR52 장영실상의 의미를 돌아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30돌을 맞은 IR52 장영실상의 발전 방향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할 것 같은데. 

    ▷산업기술이 변하면서 IR52 장영실상도 꾸준히 발전해왔다. 인공지능(AI)이나 빅데이터같이 과거에는 시장에 없었던 새로운 제품과 기술 발굴을 확대하고 있다. 작지만 강한 기술력을 가진 기업을 발굴하는 데도 더 주력할 것이다. 


    ▶▶ 구자균 회장은… 

    △1957년 서울 출생 △1982년 고려대 법학 학사 △1985~1990년 텍사스대 국제경영학 석사·기업재무 박사 △1993년 국민대 경영학과 교수 △1997년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 △2008~2009년 LS산전 대표이사 사장 △2009년 LS산전 대표이사 부회장 △2010~2012년 국제스마트그리드연합회 부회장 △2015년 LS산전 대표이사 회장 △2019년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 회장 

    [이새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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